너무 잘하려 하지 마세요.

발행일 : 2019-10-31 09:09  

  •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오늘 과학시간에 내가 했던 말이다.
    뭐든지 열심히 해도 모자를 판에 이 무슨 생뚱맞은 이야기인가... 아이들이 나를 멀뚱멀뚱 쳐다본다.

    지난주 과학 그림자 수업을 할때 아이들에게 그림자 인형에 관해서 이야기 해주고 모둠별로 다음주에 그림자 인형극을 해보자 했다. 스토리 필요없고, 상황만 몇개 해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림자 인형은 입체인형이 아니기에 대충 그려서 해도 된다 일렀다. 오늘 리마인드를 했는데,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너무 어려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컨디션이 워낙 안좋은 상태...이럴 때는 오히려 생각이 명료해진다.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보면서 가끔 느끼는 것인데....이야기 해줘도 될까요?"
    "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네?"

    "여러분은 가끔 너무 잘 하려고 애쓰다가 스스로 지치는 거 같아요"
    "......."

    "그리고 잘하려는 것에 대한 기준이 '다른 사람'보다 잘하려니 힘든 것 같구요. 잘하려는 기준은 '나'여야 합니다."
    아이들은 무슨 말인지 느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뭔말인지 모르는 듯 눈피하는 녀석....다 같이 알아들어야 할 이유도 없고, 그저 느낌만 전달되어도 된다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여러분 마음속에 무엇이든 다 잘해야만 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무엇이든 다 잘해야하면 참 좋죠. 그런데, 무엇이든 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다 멋지게 잘해야 한다는 기준을 놓고 보니 시작할 엄두가 안나는 것아닐까요?"
    그때 한 여학생이 말한다.
    "선생님, 그림자 인형극 스토리를 만들기가 어려운데 어떻게요"
    열심히 고민을 해봤을 법한 한 친구가 그리 말했다. 참 고맙게도 반응하는 것이다.

    "네, 선생님은 처음부터 스토리를 만들라고 한적은 없어요. 그저 단순한 상황을 그림자로 하자고 했어요. 예를들어,  철수야 점심먹고 축구할까? 아니! 난 점심먹고 줄넘기 할꺼야' 이정도의 상황 정도도 충분하다고 말했던것 기억나세요?"
    '아....','맞아...' 이런 짧은 한숨섞인 탄식들이 나온다.

    그제서야 다들 인정한다.

    이런식으로 몇가지 더 이야기 했다. 

    너무 모든 것을 다 잘하려고 하다보면, 아무것도 제대로 하는 것도 없고 또 하기도 전에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는 줄거리.
    그리고 무엇을 하려거든,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하는 것이고...그리고 어제의 나, 방금의 나보다 잘할 생각을 하는 것이 더 어떻겠냐고....

    아이들이 아픈 병자가 마치 유언하듯 말하니, 초집중을 한다.

    아이들에게 하는 말은 어쩜 다 내 자신에게 하는 말들이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나누는 마음이다.
    요즘 아이들은 요구되어지는 것이 많다.

    투닥투닥 싸우고 스스로 풀 시간조차 주지 않고, 무엇을 하라고 제시받은 과제가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과제를 '완.벽.히'해야 부모님들이 자신들을 사랑할 것이라 믿는다.
    이러면 안되고 저러면 안되는 것이 너무 많은 요즘 아이들이다.
    부모도, 아이도, 교사도 이런 상황 때문에 너무 피로하다.

    좀 더 실수하고, 있는 그대로를 느끼며 크면 그것이 자존감 높아지는 교육인데 말이다.
    스킬만 발달하고 신념이 없어지는, 퍼포먼스는 화려한데 고민의 깊이는 따라가지 못하는 일들은 어쩜 우리 아이들을 둘러싼 문화때문이 아닐까싶다.

    아이들을 더 자극해줘야 겠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림자 극에 관한 여러가지 동영상을 찾아서 보여줬다.

    아이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서 그랬는지, 이제는 적극적이다.
    아이들이 급 적극적인 모습을 보니 문득 1학년 동생들을 대상으로 '그림자 연극'을 해볼까? 하는 말을 할 뻔했다.
    주제도 아이들이 정하고 하는 프로젝트를 해볼까.....하다가....
    갑자기 머릿속에서는 무대장치부터 생각하게 된다.

    4 * 4 2미터짜리 각목 5~6개와 흰천만 있으면 가능하겠단 생각을 순간 했다.
    근데 생각만 하고 그냥 오늘은 말 안했다.

    여튼 이렇게 아픈데, 티안나도, 손가락과 머리만 잘돌아가니 넘 편하다.
    애들이 내 말에 집중을 잘한다. 고마운 날이다.

    #엔카운터클래스 #그림자인형극 #과학국어 #자기개념 #자아 #하루지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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