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결석에 우울증 있던 여학생 하린이 담임했던 이야기

발행일 : 2021-03-03 07:38  

하린이는 중학교 2학년 담임할 때 만난 학생이었습니다. 처음 담임 반을 뽑았을 때 하린이가 저희 반이 된 것을 보시고 주변 선생님들께서 어려운 아이니 신경 좀 써야 한다는 말씀을 하셔서 어떤 의미인지 여쭤보았는데 기본적인 부분이 잘 안 돼있어 신경쓸 것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연초에 하린이를 처음 만났을 때 한 해 동안 잘 지내보자라는 인사로 시작하고 하린이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하린이가 무단지각과 무단결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담임하면서 부모님께 학생의 뒷담을 하진 않지만 출결, 학교 폭력과 같은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부모님에게 꼭 문자를 보내 드립니다.

 

팩트만 전달해야

이때 아이의 상황에 대해 담임이 느끼는 감정을 절대 섞지 않고 팩트 위주로 문자를 발송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 하린이가 등교하지 않았습니다. 무단 결석 69일이 되면 유예처리되므로 출석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문자를 보내 드립니다. 담임이 부모님께 아이의 어려움을 말씀드리지만 아이에 대한 평가를 함부로 내리지 않으므로 부모님은 감정 상하지 않고 아이 문제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죠. 아이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부모와 담임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너무 졸려요

하린이한테 왜 늦게 오는지 물어 보니 너무 졸리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자냐고 물어 보니까 적게는 12시간 많게는 15시간 정도 잔다고 했습니다. 엄청 많이 잠을 자는 것이죠. 담임하면서 아이들이 보내는 말없는 신호에 굉징히 집중해야 하는데 우울증의 큰 특징 중 하나가 무기력하고 잠을 많이 자는 것입니다. 하린이 말을 듣고 하린이 상태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이야기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모님께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요즘 너무 사는 게 힘들어서요

아버님께서 오셔서 상담을 진행하는데 아버님께서 최근 들어 가게를 크게 확장하면서 무리했는데 생각만큼 사업이 잘 진행이 되지 않아서 굉장히 고생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해 보고자 가게에서 자고 있는 상황인데 그러다 보니 아이에 대해서 신경 쓰기가 어렵다는 말씀을 솔직하게 해주셨습니다. 아버님 말씀을 듣고, 하린이만 집에 있을 경우 생길 수 있는 일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하린이와 언니만 집에 있는 시간이 길면 심심하기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나중에는 친구들이 하린이 집을 아지트처럼 생각하게 되어 하린이 집에 들락날락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위험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하린이는 흡연와 음주 등의 문제도 있어서 어떤 이유인지 궁금했는데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니 이런 상황이 이해되었습니다. 하린이 자체는 착한데 친구들 밖에 의지할 곳이 없다보니까  친구들에게 이런 유혹이 올 때 관계가 깨질까봐 거부하지 못하고 따라하게 되다 보니 이런 문제 처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반에 친구가 없어요

하린이가 학교 생활을 하는데 또 어려운 점이 있었는데 바로 ‘교우관계’였습니다. 평소 아무리 지각을 하더라도 꼭  풀메이크업을 해서 학교에 오는데 그런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보면 주변 아이들도 하린이를 조금 멀리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담임을 하면서 눈꼬리까지 그리는 학생은 그때 처음 봤습니다. 아무리 아이가 착해도 겉보기가 좀 다르다 보니까 친구들과 어울리는 관계에서 힘들 수 있는 것이죠 . 그해 담임 반 여학생들이 너무 순했기 때문에 하린이가 그 사이에서 친구들을 사귀기가 어려워서 또 더 학교에 오기 힘든 싫은 이유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수련회도 안 간다고 했는데 왜 안 가냐고 물어보니 가도 같이 지낼 친구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다행히도 나중에 수련회 참여 최종 인원 보고 직전에 마음을 바꿔서 간다고 할 정도로 교우관계에서 힘들었습니다. 담임으로서 여학생들의 교우관계에 어려움이 생기면 도와줄 수도 힘들고, 안 도와줄 수도 없는 상황이라 참 난감합니다.

 

하린이가 수련회 경비 미납이에요

수련회을 잘 갔다 왔는데 그 뒤에 행정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하린이가 수련회 경비를 미납해서 전체 비용 처리하는데 차질이 생기는데 부모님과 통화를 한 번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 연락을 드리니 지금 상황이 너무 어려워서 수련회비를 보내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상황이 어려워서 수련회을 안 갔어야 했는데 일단 아이가 가고 싶다고 하니 보내놓고 나중에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셨답니다. 이 말을 듣고 제가 아버지께 하린이 수련회 경비는 제가 처리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담임하면서 언젠가 학생에게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와줄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그런 일이 생겼다고 스스로 뿌듯하게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나중에 여건이 좋아지면 보내주신다고 했는데 사실 돌려받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한참 지난 후에 보내주셨는데 그게 12월 말이었습니다.

 

저는 미용 쪽에 관심이 많아요.

사실 학교에 오는 것도 힘들고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서 하린이는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해서 하린이에게 물어보니 미용 쪽에 관심이 많아 그쪽으로 진학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미용을 전공할 수 있는 학교가 있어서 그쪽으로 지원해서 입학했습니다. 그곳에서 좋아하는 미용과 메이크업을 배우면서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담임하면서 아이의 상황이 갑자기 좋아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와 부모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계속 소통하고 어려움에 공감하고, 함께 했을 때 조금씩 조금씩 희망이 빛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아이는 열 번 된다는 어른 말씀이 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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