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컬럼] 기생충은 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까요?

발행일 : 2019-06-1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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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칼럼은 2019년 6월 5일 영화를 함께 본 ‘상상 그리다 필름’ 선생님들과의 이야기 나누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또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기생충’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게 뭐야?’라며 영화관을 나서면서 투덜거리거나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 ‘재미있다’라고 막연하게 나누는 사람, ‘아! 상 받을 만하다.’라고 이 영화를 극찬하는 사람. 영화가 딱 끝나고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이면서 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상상 그리다 필름’의 선생님들은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극장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아쉬움을 담아 잠시나마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생충 (2019) PARASITE, 감독 봉준호

  • 1. ‘기생충-숙주’의 관계를 집을 통해 보여준다.
  • Parasite는 기생충이라는 뜻으로도 번역되지만, 영어사전의 2번째 뜻은 경멸의 의미를 담은 기식자, 식객이다.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진 신조어 패러사이트족은 취업난과 생활비 부담으로 독립하지 않고 부모에 얹혀사는 자녀들을 가리킨다. 이 단어가 영화에서는 ‘부모-자녀’가 아니라 ‘고용인-피고용인’으로 이해하되 정말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고용인의 삶에 얹혀사는 모습을 보이는 패러사이트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부모-자식’의 관계에서도 혐오적인 시선을 가진 단어인데 생판 남인 ‘고용인-피고용인’의 관계에서 낯뜨거울 만큼 뻔뻔함에 불편함을 가지며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다.

           기생충으로 비유되는 기택(송강호)네 집은 반지하, 숙주로 비유되는 박사장(이선균)네는 언덕을 오르고 계단을 올라야 정원이 나오는 집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새로운 계층의 구조인 ‘돈’이 얼마나 있는가를 집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또한 박사장네 집의 통유리로 보이는 녹색의 잔디와 빛이 너무 평온하다. 반대로 기택네 반지하에서 보이는 풍경은 취객의 노상 방뇨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기택네를 내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시끄러운 곳이다. 두 집 모두 거실에서 밖이 보이지만 보이는 장면은 너무 다르다. 이 장면 구성을 통해 그들의 삶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냥 지하가 아니라 반지하로 보여준 것은 저 창이라는 매개를 통해 안락한 쉼과 불편한 시선의 대조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기생충인 전 가정부 문광(이정은)과 그의 남편은 빛도 보이지 않는 어둠인 지하벙커에 살고 있다. 사채까지 끌어다 쓰는 등 기택네 삶보다 더 어려운 삶을 살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 2. 4인 가정이라는 공통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대조적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 기생충으로 상징되는 기택(송강호)네 가족, 현대인의 필수품인 휴대폰도 끊기고 유일한 연락수단인 이웃의 무료 와이파이도 끊겼다. 가장 기택은 누워있고 아들 기우(최우식) 딸 기정(박소담)만이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한때는 금메달까지 받았던 기택이지만 이제는 삶의 의욕이 없다. 또 살기 위해서 부끄러움도 없다. 잘못 접힌 피자 박스의 임금을 주지 못하겠다는 젊은 여사장에게 오히려 알바 면접을 보게 해달라고 능청을 부리는 기우, 기정의 모습은 살기 위해 인간의 부끄러움은 사치라는 느낌을 준다. 당장 돈이 생기자 필라이트와 과자 파티를 벌이는 계획 없는 삶. 그 사이 명문대에 다니는 기우의 친구가 할아버지의 선물이라며 수석을 가져온다. 이 가난한 집에 부잣집의 수집 품목인 수석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이 수석이 상징하는 것은 재물이다. 그래서인지 친구는 수석과 함께 귀한 거짓 일자리를 소개한다. 고액과외. 지금 당장 먹고살기 힘들어 휴대폰까지 끊긴 상황에서 거짓말이 무슨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인정받는 IT계열 박사장(이선균)과 그의 아내 연교(조여정), 똑똑하지만 부족한 그들의 삶에 파고들어간 기우는 심플한 연교 덕에 쉽게 고액 과외 자리를 딸 수 있었다. 심지어 기정까지도 인터넷에서 잠시 검색한 미술 치료 내용으로 더 비싼 과외 자리를 만들었다. 결국, 그들의 밀고 들어옴에 그 가정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줄줄이 내쫓기고 기택과 충숙(장혜진)까지 숙주의 집에 안전하게 들어온다. 똑똑하고 돈이 많은 만큼 세상에 이 정도의 일을 할 사람도 많기에 작은 선 하나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조용히 그만두게 하는 예의 바른 박사장네 덕분이다. 하지만 일 할 사람들을 쉽게 믿지 못하니 한번 본 기우, 기정, 기택의 소개를 통해서 쉽게 사랑을 믿고 들이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연출한다. 게다가 부족할 것 없는 가정에서 애정을 갈망하는 다혜와 통제되지 않는 다송은 기우, 기정의 모습과는 전혀 반대다. 또한 예술가가 지은 아름다운 거실과 심플한 인테리어와 어울리지 않는 불안한 심리를 드러내는 다송의 그림이 마치 기택의 집에 어울리지 않는 수석과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부지런하고 계획적인 가장과 무기력하고 무계획적인 가장, 같은 집에서 부딪히는 4인 가족의 극과 극의 풍경. 

  • 3. 기생충과 숙주의 감출 수 없는 차이의 상징, 물과 냄새
  • 이 영화에서 가장 큰 핵심적 상징요소가 냄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겉을 다 감추고 연기를 하지만 그 가난의 냄새는 감출 수가 없다. 가족임을 감췄지만 같은 냄새가 나고, 갑자기 나타난 박사장 내외를 피해 기택네가 박사장 거실의 테이블에 숨지만 이상하게 그 냄새가 난다. 반지하의 빨래 건조대에 걸린 양말이 그것을 잘 형상화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냄새에 관한 박사장과 연교의 행동에 기택에게 지금까지 묻어두었던 수치심과 분노가 폭발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선을 넘을 듯 말 듯 그 선을 지켜서 좋아. 그런데 그 냄새가 선을 넘지.",

         "왜 가끔 지하철 탈 때 나는 냄새 말이야." 


          또 다른 상징요소 물(비)은 두 가정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요소이다. 이 물을 통해 반지하(가난) 냄새를 만들어 냈다. 또한 어떤 이에게는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을 어떤 이에게는 입을 의식주 모두를 빼앗은 매체가 되기도 한다. 박사장네 둘째 아들 다송이의 생일을 맞아 떠난 캠핑에서 폭우가 쏟아진다. 캠핑을 보내고 빈집을 정말 자기 집처럼 사용하는 기택네. 심지어 그 집의 구석구석까지도 넘본다. 하지만 폭우로 돌아온 박사장네로 인해 우산 하나 없이 도망간다. 여기서 다송이의 인디언 텐트조차 비 한 방울 들어가지 않는데 기택네는 비로 인해 집의 변기까지 역류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집에 가는 길을 보여주는 감독의 장면구성력은 대단하다. 내리막을 내려와 계단을 내려오고 내려오고 내려오고 물이 쏟아져 그 밑으로 내려오고 끝없이 내려온다. 이 길을 올라 박사장네 출근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수많은 하강을 하고도 모자라 집을 다 물에 잠기게 한다. 절망의 끝으로 몰고 가는 이 장면은 카메라의 하강으로 우리까지 절망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결국 집에 잠겨 짐 하나 없음에도 그 비극적 상황에서도 주말수당을 위해 박사장네로 가야하는 비참한 처지까지 만들어 주는 물의 역할은 대단하다.

  • 4. 선과 공생

  • 문광이 기생충으로 박사장네와 공생할 수 있었던 것은 1인분의 식사만 더해지면 행복했던 그들의 만족 덕분이었다. 심지어 문광의 남편은 박사장을 존경하고 그 존경을 등을 통해 표시했다. 하지만 기택, 충숙, 기우, 기정은 수석(욕심) 때문이었는지 그 욕심이 커져 그 집의 주인이 되는 김칫국을 마셨다. 그리고 박사장이 항상 말하는 그 선(線), 선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지키지 못하자 그 공생이 무너지고 만다. 너무 많은 것을 탐냈다. 그리고 문광과 기택네가 공생할 수 있었지만 기생충은 한 숙주를 둘 수 없었기에 전쟁이 시작된다. 하지만 결국 이 선을 넘은 사람들의 태도로 인해 모든 공생은 파괴되고야 만다. (숙주의 입장에서는 기택을 통해 이이제이(以夷制夷)로 볼 수 있다고...)


    마음 한편으로는 선(善)을 추구했지만 먹고사는 문제 앞에 서로를 죽음으로 몰고 간 기생충들. 그리고 말과 경멸, 행동의 선(線)을 지키지 못한 숙주의 죽음. 

          "계획 중에 실패하지 않는 계획은 무계획이야." 

          기택이 보여주는 행동은 최고로 충동적인 모습이었고 또 계속 자신의 냄새를 확인하던 그 모멸감을 드러내는 행동이었다. 심지어 문광의 가족들과 자신들이 기생충인 것에 대한 동질감의 폭발이기까지 했다. (둘은 모두 대만 카스테라집을 계기로 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사전 조사 없이 유행에 휩쓸려 사업을 했고 그 결과 망했다.)


     영화 안에서 ‘선(線)’과 ‘착하다(善)’는 말을 계속 반복하여 영화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내고 또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한편으로는 번역에서 이 요소를 외국인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인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이다.)

  • 5. 기생충에게 미래 따윈 없습니다.
  • 이 영화에서는 절대 악으로 여겨졌던 부자가 악으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기생충들의 당당한 모습에 기가 찬다. 기택네가 착하고 잘 속는 박사장 내외를 언급하고 문광이 자신에게 해를 끼친 충숙에게 착하다고 표현하고 또 충숙과 기정이 문광 내외를 챙기는 이 착한 사람들만 등장하는 이 영화. 하지만 너무 비극적이고 잔인해서 오히려 너무 씁쓸하기까지 하다. 마지막 장면조차 다시 상승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주는 듯 하지만 하강으로 완전히 희망조차 없게 만들어 버린 감독. 빛과 구조, 대조, 배우들의 감정선을 보여주는 클로우즈업, 의미심장한 대사들로 영화를 채워주며 다시 한번 현실의 아픔을 후벼 파는 역량을 보여준다. 


         봉준호 감독은 눈 가린 포스터를 통해 이 숙주가, 기생충이 우리가 될 수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수석을 내려놓듯 욕심을 조금 덜어내고 공생의 선을 지키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성실한 삶. 이것이 새드 엔딩 속 감독이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마지막 공생의 선(善)은 아니었을까 싶다.

  • 또 어떤 대비와 상징, 미장센(화면구성)을 찾으셨나요? 댓글로 영화 이야기를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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