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발행일 : 2018-09-11 13:47  

  •  시대를 깨운 파격의 저작, 열하일기

    조선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내 나라땅을 벗어나기 쉽지 않았고 또 이를 숙명으로 알고 살았었다. 그런데 좁은 조선 땅을 떠나 광활한 중국대륙을 약 100여 일 동안 여행한 선비가 있었다. 벅찬 감격을 통곡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이, 연암 박지원이다. 연암이 청나라에 다녀온 뒤 쓴 열하일기는 조선 최고의 여행기이다. 하지만 당대 큰 파장을 일으켰고 문제의 책으로 찍혀 출간되지도 못했다. 상당히 위험한 책이었다. 당시 주류의 양반사대부나 또는 국왕이 요구했던 그런 문체와는 다르게 대단히 소프트하다면 소프트한데, 혼종, 이런 것들이 당대의 많은 젊은이들의 의식을 망가뜨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연암이 중국을 여행했던 18세기 후반, 조선은 청을 원수로 여기고 배척했다. 임란 때 구원병을 보내준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두 번이나 침략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청이라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봤고 사신단으로 가는 것조차 수치로 여겼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 속 청나라 황제가 칠순을 맞은 1780년 5월, 조선은 축하사절단을 보낸다. 이때 연암도 개인수행원 자격으로 중국땅을 밟게 됐고 당시 세계 중심이었던 청의 문물을 접하게 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십 차례 험한 강과 산을 지나 만리장성까지 넘어 황제가 있는 목적지 열하에 도착했다. 황제의 여름별궁이 위치한 곳, 열하는 화려하고 웅장함 그 자체였다. 다양한 이국문명을 접하면서 연암은 낯선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자 노력하던 연암의 여행은 참으로 거침없었다. 조선은 청을 배척했지만 그는 편견을 갖지 않았고 청의 문물을 폄훼하지도 않았다.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의 신분도 중요치 않았다. ‘이들은 비록 학문이 높지 않았지만 자기 일에 해박한 상인들이었다. 상인들과 골동품을 고르는 법, 수제그릇을 만드는 법 등 청나라 문물과 풍속에 대해 밤새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밝았다’



  •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 했다. 청의 선진문물, 앞선 문명의 토대를 이루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화려한 스펙타클에 주목한 게 아니다. 거대한 제국, 만리장성, 자금성 그것이 문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 게 아니고 유명한 테제가 청나라 문명의 정수는 기와조각과 똥부스러기에 있다. 그 말이 나오려면 그런 삶을 세밀하게 관찰했다는 것이다.


    조선으로 돌아오기까지 6천리 길, 연암은 청나라를 종횡무진하며 조선이 배울 장점을 끊임없이 기록했다. 운송수단의 발달로 상업이 활성화되니 연암은 수레를 보며 경제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수레는 하늘이 낸 물건이로다. 허나 조선에 수레가 다니지 않기에 백성의 살림살이가 가난한 것이다’ 연암이 주목한 것은 일상적인 생활에 이롭게 쓰이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이었다. 연암은 돌의 제조와 활용을 보고 ‘집을 짓는데 벽돌을 쓰면 화재나 도둑 걱정이 없고 새, 쥐, 뱀 등에 의한 피해를 막을 수 있다’ 낙후된 조선을 개혁할 방법을 찾으려 했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도덕과 명분을 앞세운 다른 양반들과는 달리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 그것이 열하일기가 담고자 정신이었다.


    물질적인 기반, 경제사회구조, 이런 전체에 대한 열린 시각, 통관할 수 있고, 주역에서 얘기하는 대관, 크게 볼 수 있고 지도자는 아니지만 지도자 이상으로 넓은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굉장히 실질적으로 조사한 글이다. 그것이 바로 실학정신이다. 조선을 개혁하고자 했던 열망으로 18세기 중국의 모든 것을 기록했다. <열하일기>는 더 넓은 세상 앞에 눈감고 있는 폐쇄적인 조선을 향한 외침이었다. ‘백성에게 유익하고 국가에 유용할 때에는 비록 그 법이 오랑캐로부터 나왔다고 할지라도 주저 없이 배워서 백성들에게 이익을 줘야 한다.’ <열하일기>를 통해 집대성된 실학사상은 후대학자들과 개화기의 진보적 학자들에게로 이어졌다. (김정희, 박규수, 오경석) 세상의 흐름을 직시하고 나아갈 길을 고민하는, 그것이 연암의 여정이었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발상의 전환, <열하일기>는 길 잃은 시대의 이정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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