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는 교사 19일차 <교사의 마음-삶에 고산병이 찾아오면>

발행일 : 2024-04-28 16:21  

우리가 새로운 환경에서 살기 위해서는 적응하기 위한 아픔을 겪어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통과의례를 치러야 하는 거죠. 저희 가족은 마다가스카르에 1년 정도를 살았는데요. 그때도 그랬습니다. 온 가족이 조금씩은 아팠고, 저도 장염으로 일주일간 고생했습니다. 한두 달쯤 뒤에 아내에게는 알 수 없는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아내는 우리가 일상을 느끼지 못하는 중력을 몇 배나 느끼는 듯하다고 했습니다. 두통, 메스꺼움, 무기력함으로 집 밖으로 잠시 나가는 것조차 힘들어 했습니다. 알고 보니 고산 증세 였습니다. 저희가 있던 지역은 수도 안타나나리보와 가까운 도시였는데, 해발고도 1300~1400m의 고지대였습니다. 마다가스카르의 중부지역의 고산지대는 다른 지역에 비해 날씨가 덥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살고 도시가 발달해 있습니다. 지리산 노고단이 1507m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저희는 한국이라면 아주 깊고 높은 산 속에서 생활하는 것과 같은 거였죠.

이곳에서 나고 자란 현지인들을 그렇지 않지만, 한국에서 이곳에 오신 분들 중에서는 간혹 이런 고산병 증세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들이 있다고 하셨는데, 제 아내가 그랬습니다.

이런 고산병에는 타이레놀 같은 약을 먹는 것이 조금은 도움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병의 유일한 해결책은 며칠이라도 지대가 낮은 곳에서 머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좋아진다고?'하는 의심도 들었고, 다른 지역에 가서 며칠 머무른다는 것도 부담되었습니다. 그렇게 망설이는 동안 아내는 더 심하게 아팠고, 결국 모든 것을 멈추고 3~4시간 차를 타고 낮은 지대의 숙소에 머물며 며칠을 보냈습니다.

놀랍게도 아내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두세 달에 한 번씩은 그렇게 해야 아내가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내가 아는 무슨 수를 써보아도 내가 가지고 있는 만성적인 아픔들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결국은 내려가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까지 올라갔든, 어떤 일을 하고 있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아무리 좋은 위치에 있어도 내가 있는 곳에서 나는 홀로 계속 아프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더 높은 곳이 있으면 내려오는 데에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스스로 아픈 자리가 있는지 가만히 만져보고, 고통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잠시라도 내려와 보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루고, 오르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을 내려놓고, 한 숨을 쉬는 것이 필요한 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내려가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제가 마다가스카르에 가게 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제가 노력해서 이루고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애써온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올라간 곳도 한 것도 없었지만) 제가 살았던 습관과 방법을 내려놓고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살아왔던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려가기 위한 육아휴직을 하고, 휴직을 연장을 하면서, 저를 생각하시는 분들은 제가 쌓아온 것들을 계속 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연수 강사로 해왔던 것들이나, 교육청의 사업에 참여하던 것들이요.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대전에서 세종으로 근무지를 옮기면서도 그랬고, 육아휴직을 하면서도 그랬습니다. 나름의 경력단절을 겪었죠.

마다가스카르를 갈 때는 저희 가족이 가졌던 모든 짐을 나누고 버리기도 했습니다. 아까운 것도 있었지만, 우리의 삶에도 고산증세가 있음을 알기에 결단하고 선택한 삶이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많은 책을 나누었고, 집안 살림도 그리 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실지 모르지만, 그렇게 다른 산을 오르는 삶이었습니다.

아내가 고산증세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때, 저희 가족에게 영어를 가르쳐주시는 피피 선생님이 어느날 수업에서 하셨던 말 한마디가 기억에 남습니다. 피피는 수업을 하기 전, 지난 며칠 간 밤에 한숨도 못 잤는데 병원에 가도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희 부부은 당연하게 아주 짧은 영어로 너도 너무 힘들겠다며 고생했다는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그때 피피는 미소를 머금고 'god is good'이라는 말을 우리 부부에게 여러 번 말했습니다. 자신의 건강이나 상황과 상관없이 그것은 나에게 선한 일이고, 여전히 감사하다는 거였습니다. 놀라운 고백이었습니다.

제가 올랐던 모든 것이 틀렸다고 생각되고, 삶의 고산증세 시달리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려 가고, 다른 산을 오르는 것이 너무 힘들고, 때로는 알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며 내 마음에 어둠이 찾아와도. 그래도 저에게는 선한 일이고, 좋은 삶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렇게 그렇게, 그녀의 고백이 저의 고백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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