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는 교사 14일차 <교사의 시선-완벽하다>

발행일 : 2024-04-23 08:15  

'완벽하다'라는 단어는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요. 우리가 꿈꾸는 수업이 그대로 이루진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 내 수업을 보고 그런 말을 해준다면 기분이 날아갈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완벽한 수업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제 생각에 가장 중요한 것은 완벽한 학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를 가르쳐도 열을 안다는 것을 실감나게 하는

배움의 욕구가 충만하고 눈빛은 언제나 총총

단 한 번도 피곤한 모습 없이 늘 바르고 착한

그러면서도 다른 친구를 배려하고 나눌 줄 아는 그런 학생이요

 

그림책 <완벽한 아이 팔아요>에서는 뒤프레 부부가 아이아트 쇼핑몰에 가서 '바티스트'라는 이름을 가진 완벽한 아이를 사옵니다. 바티스트는 반찬투정도 하지 않고, 혼자서도 잘 놀고, 잠도 일찍 잡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바티스트를 보고 부부는 너무나 만족해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부모의 역할을 소홀히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뒤플레 부부는 자신들의 실수에 화를 내는 바티스트를 반품하려고 다시 마트를 찾습니다. 그때, 바티스트는 오히려 점원에게 되묻습니다. "...혹시 저한테도 완벽한 부모님을 찾아 주실 수 있나요?"라고요.

 

얼마전, 아내가 추천해준 책에서 '완벽'이라는 단어를 발견했습니다. <완벽주의와 작별을 고하다>(코넬리아 마크, 토기장이)라는 책이었어요. 책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안정감을 주더라고요.

누군가에게 저에게 "완벽한 수업이에요."라는 말을 들으면 저는 오히려 불안할 것 같습니다. 사실과 멀다고 느낄 것입니다. 저는 완벽과 거리가 먼 교사니까요.

누군가에게 완벽을 권한다면, 나 자신도 완벽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공평한 것 같습니다. 완벽한 학생이 있으려면, 완벽한 교사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완벽을 요구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완벽하지 않은 존재가 만나는 시공간이 바로 학교인 것 같습니다.

사실 완벽주의를 가진 사람을 관찰해보면 그 사람은 자유하지 못합니다. 뭐든 내가 해야 일이 제대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못합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잘 한 것이라도 내 기준에 차지 않으면 부족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완벽주의인 사람은 있어도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어디엔가는 반드시 흠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는 수업을 생명에 비유하곤 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생명과 같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 수업입니다. 모든 수업은 다 다릅니다. 같은 교사와 같은 학생이 수업을 해도, 상황과 환경이 다르고, 가르치고 배우는 내용이 다릅니다. 혹 그것들이 같다고 해도 매 순간 각 사람들의 마음이 다릅니다. 같은 수업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수업이 생명과 같다면, 완벽을 추구하는 수업은 있어도 완벽한 수업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은 성장하기 위해서 계속 변하고 있고, 그 변화는 결국 완벽하지 않다는 증거니까요.

만약 완벽한 수업이 존재한다면, 그 수업은 생명이 없지만 마치 살아 있는 듯하게 보이는 잘 박제된 수업일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아이들이 선생님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의 생각을 멋지게 발표를 해서 흠 잡을 데가 하나도 없는 그런 완벽한 수업을 꿈꾸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순간이 그렇게 흘러갈 수 있는 수업은 없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수업들이 계속된다면, 그 수업은 진짜 수업이 아닌 수업의 형태를 갖춘 연극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수업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떨 때에는 제 수업이 불완전하다는 생각이 불안감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그 생각이 온 마음을 삼키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가질 때도 있죠. '오늘 하루만 무사히.' 저도 수업이 두려울 때가 많습니다. 아직 준비가 다 되지 못한 상태에서 수업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일 만 시간을 투자하면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된다고하지만 수업만큼은 그 말과 거리가 먼 것만 같습니다. 저는 여전히 하루살이 수업 중입니다. 그리고 내가 어제 열심히 수업이 내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도 압니다. 긴장감이 사라져서 수업이 무너지거나, 누군가는 배움에서 도주할 것도 압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수업은 흥미롭습니다.

스티븐 호킹 박사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주의 기본 법칙 중 하나는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완벽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불완전함 덕분에 당신도 나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수업 속에서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기대하고 기댈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로를 도울 수 있는 부분들이 존재하니까요.

저는 학생들의 모든 상황을 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학습을 준비할 때는 학생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모둠활동을 할 때는 모둠장들에게 권한을 줍니다. 모둠 안에서 모둠장이 모둠활동을 진행합니다. 정말 필요할 때, 저를 부르게 합니다. 제가 모르는 것이 있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럴 때에는 같이 책의 내용을 다시 보고, 인터넷을 검색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이 수업이 완벽하진 않지만, 살아 있구나!'라는 것을요.

수업이 살아 있기에 수업은 언제든 변화가 가능하기도 합니다. 학생들과 이렇게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은 문득 수업 안에서 들기도 합니다.

언젠가 제가 준비해간 수업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써보는 글쓰기 활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업을 하는 도중 '엄마가 딸에게'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제는 책에서 인상 깊은 구절을 사진을 배경으로 글로 쓰는 수업을 했었는데, 오늘은 그 활동을 반복하되 부모님께 쓰는 글을 쓰고, 실제로 부모님께 메시지를 보내보자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거든요. 그게 학생들에게 좀더 의미 있는 글쓰기 활동이 될 것 같았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살아 있는 수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부모님이 답장 메시지를 주면 사탕을 선물로 주겠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쓴 글을 실제로 부모님께 보낸다고 하니… 그리고 사탕을 먹을 수 있으니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이 보였어요. 수업이 끝난 뒤에도 몇 명의 학생은 부모님께 온 답장을 들고 교무실로 오기도 했습니다. 참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아이들도 완벽하게 불완전하다는 것을 서로가 압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함께 지내면, 서로 부족함을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뭔가를 함께 해볼 수 있겠다는 믿음이요. 이런 믿음이 매 년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불완전함을 함께 했을 때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교사와 학생은 모두 불완전하기 때문에 빈틈이 있고, 그 빈틈을 통해 새로운 것을 시도해봅니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새로운 수업에 대한 용기가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완전한 수업이 학생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우리의 수업은 완벽하게 짜여진 코스 여행이 아니라 불완전하기에 흥미롭고 즐거운 자유한 여행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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