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승리호'는 이야기로 가득한데 우주공간은 비어 있다.

발행일 : 2021-02-07 22:56  

 

영화 '승리호'는 이야기로 가득한데 우주공간은 비어 있다.

승리호를 보려고 넷플릭스를 결제했는데.......

 

승리호 줄거리

2092년의 미래에 지구가 오염되어 황폐해지자 우주의 행성에 새로운 삶의 터전인 UTS(Utopia above the Sky)을 건설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선택된 소수의 사람만이  살 수 있고 나머지 소외된 사람들은 황폐해진 지구에 남거나 우주 노동자가 되어 겨우 생존한다.

 승리호(넷플렉스 오리지널 영화)를 보기 위해 넷플렉스를 결제했다. 그동안 꾹 참고 참았던 넷플릭스를 결국 결재했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고 싶어도 결제를 하지 않고 버텼다. 주위에서 넷플렉스 오리지널 영화나 드라마를 이야기할 때도 혼자 묵묵히 듣고 있었다. 내가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해서 넷플릭스 중독에 빠지는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승리호를 보기 위해 결국 넷플릭스에 가입했다. 승리호가 시작되자 나는 혼자 입맛을 다시며 탄식했다.

'우주 SF 영화는 무조건 4D극장에서 봐야 맛이 나는데...'
'더구나 승리호는 한국 최초의 우주 SF영화가 아닌가.'


혼자 안방 극장에서 주섬주섬 과자를 먹으며 보는 우주 SF 영화 감상은 극장이 주는 몰입감과 긴장감이 없어 아쉬웠다. 물론 간식을 먹느라 영화에 집중하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다. 개봉 전부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지만 제목이 뭔가 가볍게 느껴졌다. 이미 제목으로 영화의 결론을 유추할 수 있는 느낌이었다. <스타워즈>나 <그래비티> 또는 <마션>처럼 제목에서 좀 새로움이 있으면 더 좋았겠다. 물론 영화 분위기에 어울리는 제목을 붙였겠지만 승리호는 뭔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또한 영화 곳곳에 의도적으로 나타나는 한글이 어색하게 느껴진 것은 나만의 느낌인지 궁금하다. 
 

우주라는 공간이 주는 신비로움은 어디에...

나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특별히 좋아한다. 그 이유는 무한한 우주 공간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 비행선에서 바라보는 영롱하게 파란 지구의 모습이나 우주 공간을 홀로 비행하는 우주 비행사의 고독감과 우주 공간의 적막감은 비현실적이면서 매력적이다. 이번 생애에 기회가 된다면 꼭 우주에 가고 싶다. 그래서 지금도 매달 적금을 붓고 있다. 이름하여 '우주여행' 적금이다. 

승리호를 특별히 기대한 이유도 이 우주 공간을 생생하게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우주공간은 끝없이 펼쳐지고 우주비행 시간도 충분히 할애되어 있다. 그런데  뭔가 아쉽다. 우주공간의 광활함이 충분히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맛집으로 소문난 음식점에서 메인 요리를 먹고 나왔는데 깔끔한 디저트를 또 먹고 싶은 마음이다. 분명히 우주 공간에서 펼쳐지는 SF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우주선 안에서만 벌어지는 이야기처럼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 이유는 우주라는 공간이 가진 광대함과 여유를 느낄 사이도 없이 영화가 빠른 전개로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또한 지나치게 액션과 전투 장면이 많아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감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마치 액션영화의 자동차 추격 장면처럼 우주 전투 장면은 박진감이 느껴지지만 배우들의 감정을 긴 호흡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적어 관객이 깊이 있게 몰입할 수 순간이 적었다. 

승리호를 보면서 한국 영화도 이제 이렇게 거대한 우주 SF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뿌듯함과 벅찬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우주 영화에 걸맞는 장대한 서사나 세계관을 기대한 것은 나의 지나친 기대였을까? 가볍게 즐기려고 보는 영화에서 내가 지나치게 진지함을 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주라는 공간이 단순히 지구를 대체하는 공간이나 생존의 공간이 아니라 좀 더 확장된 의미를 가졌다면 영화의 주제를 좀 더 음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승리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 넷플릭스


정의가 승리하는 세상이 존재하는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가진 것 없어서 잃을 것도 없는 가난한 밑바닥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부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 내면에는 아직 정의감이 남아 있다. 

영화 속 배경은 우리 사회의 모습과 흡사하다. 권력과 돈이 있는 사람들의 세계와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세계, 그리고 더 가진 사람을 동경하고 추락하지 않기 않기 위해 애쓰는 중간 계층의 삶으로 나뉜다. 영화와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우주선 팀원들은 위기를 겪을수록 결속력과 대처 능력이 강해진다. 그만큼 적들의 위협과 공격도 점점 거세진다. 사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는 각자의 세계에 살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갈등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 사이에 '도로시'라는 상징적인 존재가 놓여 있다. 도로시는 두 계급 모두에게 간절히 필요한 존재다. 가진 자는 더 잘 살기 위해 도로시가 필요하고 못 가진 자는 살아남기 위해 도로시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도로시는 무엇일까? 부동산, 일자리, 안정적인 노후, 부와 권력, 자녀 교육 등 수많은 도로시는 존재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도로시를 차지하기 위해 무한 경쟁을 한다. 그런데 누가 도로시를 차지하기 유리할까? 현실에서 답은 너무나 쉽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도로시를 차지한다. 못 가진 자에게 도로시는 간절하지만 도로시는 언제나 가진 자들의 몫이다.  

"솔직히 우리는 돈을 못 벌어. 일을 하면 할수록 빚만 늘잖아."

김태호(송중기)의 대사는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세습과 가난의 악순환의 고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당신은 불행한 성공을 원하는가, 가난한 행복을 원하는가


나에게 누가 불행한 성공과 가난한 행복 중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한참 고민할 것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성공도 온전한 행복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 속의 인물들은 진지한 고민 없이 가난한 행복을 선택한다. 나는 이 선택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가난한 사람도 간절한 욕망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질문을 현실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한다면 그는 불행한 성공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가난한 사람은 부와 성공을 간절히 동경하기 때문이다. 가진 자 역시 불행한 성공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가진 자는 실패하거나 가난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선과 악의 구분은 더욱 희미해진다. 현실에서는 정의보다 생존이 더 절박하기 때문이다.
 

 

    승리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 넷플릭스

 

세상에서 누구의 목숨이 가장 소중한가

영화는 관객에게 누구의 목숨이 가장 소중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죽은 사람의 목숨이 가장 소중한가? 어린 사람의 목숨이 가장 소중한가? 소수의 목숨보다 다수의 목숨이 가장 소중한가? 가진 자의 목숨이 가장 소중한가? 가진 것 없고 힘 없는 자의 목숨이 가장 소중한가? 자신의 목숨이 가장 소중한가? 타인의 목숨이 가장 소중한가?

영화를 보며 가슴 아팠던 것 자꾸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희생 당하는 모습이었다. 이것은 영화와 지금의 현실이 중첩되는 부분이다. 코로나가 온 지구를 재앙처럼 엄습한 지금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삶의 터전을 잃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있다. 세상은 점점 나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생존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타인의 선의를 기대하는 것으로 생존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영화 속 도로시(박예린)는 이렇게 말한다. 

"태호 삼촌 그거 알아요. 우주에서는 위도 없고 아래도 없대요. 우주의 마음으로 보면 버릴 것도 없고 귀한 것도 없다고 아빠가 말했어요."

영화 속의 도로시의 말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현실에서는 눈송이가 흩어져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녹아버리는 것처럼 서글프고 차가운 말이 된다. 우리는 진정 도로시의 말과 같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가진 사람들이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하는 거짓 주문이나 현혹적인 문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연대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 

진정한 변화는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대의 힘에서 나온다. 영화 승리호는 가진 자를 끝내 이길 수 없지만 결국 패배한다고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가진 것 없는 자들의 용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승리호의 넷플릭스 개봉은 한국 영화조차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기 어려워진 암울한 우리나라의 문화 현실을 냉혹하게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와 오마이 뉴스에 중복 게재합니다.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717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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